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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현진건 술 권하는 사회 1921

by 내친구지혜 2025. 2. 19.

술권하는사회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지은이 현진건  [1900~1943]  
호는 빙허. 경북 대구 출생. 1920년 <개벽>에 단편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게 된 이후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다가 1943년, 서울에서 신병으로 사망하였다.  
대표작으로 단편 <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 사감과 러브레터> 등과 장편 <적도> <무영탑> 등이 있다.  
현진건은 염상섭과 함께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작가이자 기교의 가치를 보여 준 최초의 작가이다. 그는 정확하고 풍부한  언어.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체 문체, 플롯 전개에 있어서의 뛰어나고도 긴밀한 극적 구성법 등으로 식민지 하에서 수난당하는 우리 민족의 참상을  폭로, 고발함으로써 일제에 대한 끈질긴 저항의 자세로 강렬한 민족의식을 표현하였다.  현진건의 소설들은 구조에 있어서 반어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특성은 당대 사회나 인간성의 모순점들을 소설로 형상화시키기 위  한 노력의 결과로 해석된다.

이해와 감상


<술 권하는 사회>는 일제 치하에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지식  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현진건의 다른 작품인 <빈처>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의 고뇌를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가정을 중심으로 하되  그 고뇌가 사회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간접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투시하고자 하는 작가 의식을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지식인 남편은 가정과 사회, 양쪽 모두에서 실패한 인물로 나타난다. 봉건적 사고를 지닌 무지한 아내는 남편의 유학으로 인해 감수해야 했던 오랜 독수공방의 세월을 남편의 부와 명예를 통해 보상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 버리자 남편의 고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을 부리고 원망을 한다.
한편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은 그의 꿈과 포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만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자신의 꿈을 펼쳐 보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번번이 그의 시도들을 무산시켜 버린다. 그의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모  순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 나약한 지식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사면이 막힌 방이다.
그에게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맞서 싸우거나 암담한 현실을 타파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술에 취해 괴로움을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의 한계라기보다 당시 지식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시대 상황이 그만큼 암울했음을 호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통로가 차단된 막막한 현실의 벽 앞에 선 지식인. 과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 고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더 연구해 보기  


최서해 <탈출기>(1925 년)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벗어날 길 없는 극심한 가난이 부조리하고 모순된 사회 구조에서 기인함을 깨닫고 집을 뛰쳐나가 사회개혁운동을 하는 단체에 가  입 한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잠시나마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술에 취해 사는 나약한 지식인 남편이, <탈출기>에서는 부조리한 사회를 뜯어고치고자 가족의 생계를 외면한 채 뛰쳐나가는 적극적인 행동파 남편이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유학생들의 삶


3.1 운동 이후 일제는 문화통치라는 미명 하에 교묘한 방법으로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말살하기 시작하였다. 교육제도에 있어서는 서당을 폐쇄하고  한국인 학생의 대학 입학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한국인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철저하게 막은 반면, 음성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동화를 목적으로 한국 학생들의 일본 유학을 적극 유도함으로써 1931년에는 일본 유학생 수가 3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 유학생은 대부분 부유한 가정의 자제들이거나 가난한 고학생들로서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다.
문제는 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취업이나 다른 활동의 통로가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언론 출판의 자유는 엄격하게 통제되었고, 사회 활동의 기회 역시 친일자가 되지 않고는 얻기가 어려있다. 이러한 상황에  서 이들 지식인들이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철저하게 친일자가 되어 일제에 아부하는 것뿐이었다. 변절하고 세류에 영합하여 살 것인가 끝까지 한국인으로서의 지조를 지길 것인가. 이것이 유학생들을 포합 한 당대 지식인들의 발목을 붙잡았던 최대의 딜레마였다.  

출처 :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 단편소설 베스트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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